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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수 칼럼] 행복을 넘어 사랑의 차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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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전제는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고통을 공유한다는 것은 지치고 힘들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세상은 나눔을 통해 약자와 외로운 자를 보호하고 불평등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며 상처를 치유하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싹을 틔워주는 일이다. 그것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알려준다. 


 기부는 축복의 십자가다. 사랑과 희망을 나눈다는 것은 삶의 가장 아름다운 가치다. 기부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편안이며 사랑과 기쁨이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후원자와의 무언의 대화는 축복이며 행복이다. 후원자는 나눔으로 전해지는 행복으로 풍성한 영적인 삶이 채워진다. 모래사막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듯하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허전함과 외로움은 당연하다. 작은 출발이지만 소외된 이웃을 살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작은 기부는 작은 의미를 담지 않는다. 준다는 것은 물품의 가치가 아니라 행복의 의미다. 흔히 기부는 남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공감의 뜻이라고 한다면 삶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부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방법으로 나뉜다. 가장 우리에게 쉽고 누구나가 해본 적이 있는 기부는 주는 행위(giving)다. 


 지하철 안에서나 길거리에서 걸인에게 적선하는 것이나 수퍼마켓이나 은행에 설치된 불우이웃 돕기, 모금통에 거스름 돈을 넣는 그런 것들을 주는 행위의 기부형태다. '단순히 주는 행위'는 돕고자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원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자선(charity)는 수재민을 위해 담요나 음식물을 제공한다든지 노숙자를 위해 임시거처를 제공하기 위해 또는 소년소녀가장들에 대한 생활보조를 위해 기부를 한다. 


 자선이란 말은 라틴어의 '사랑으로 주어진 기부(GIFT GIVEN OUT OF LOVE)'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으며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간의 동정적이고 감정적 관계가 전제된다. 

 마지막 기부의 형태에는 박애적 기부(philanthropy)가 있다. 개개인의 문제 말고도 사회에는 빈곤문제, 환경문제, 아동학대 문제, 노인문제, 디지털 격차 문제, 여성차별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박애적 기부는 개개인의 욕구가 아닌 좀 더 넓고 좀 더 공공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부하는 것이다. 박애활동은 라틴어의 '깊은 인간애(love of humanity)'에서 나온 말로, 단순히 주는 행위나 자선과는 기부 동기 면에서 차이가 있다. 박애적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의 결과로서 인간사회가 지속적이고 발전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하는 투자이기 때문에 기부자의 비전, 세계에 대한 이해노력, 신념 등이 필요하다. 우리의 나눔이 바로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 원로목회자의 삶에서 이런 관심과 사랑은 한국교회를 세우고 일으킨 어른에 대한 공경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기부, 자선과 박애활동을 분류하는 것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기부하는 사람의 의도, 기대, 비전의 차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행복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행복이 영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을 넘어 우리는 사랑의 차원이 되어야 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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